정감록 예언

Posted by 픽업포인트
2016.09.05 15:51 일상이야기

정감록 소름돋는 예언



정감록(鄭鑑錄)은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널리 퍼진 예언서로 송하비결과 격암유록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예언서로 꼽히고 있다. 실존 여부를 알 수 없는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풍수 사상과 도참 신앙이 합쳐져 이루어진 난해한 책으로, 국가 운명과 생민 존망(生民存亡)에 대한 판단을 담고 있다.


옛날 정감록이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미리예언이 맞았다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감록 예언에 대한 진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선이 운명을 다하고 정씨가 계룡에 새 도읍지를 세울 것이다라는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정감록(鄭鑑錄).



결국, 조선왕조는 정감록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정감록은 이후로도 6.25전쟁까지 암시했다는고 한다. 



정감록의 정감·이심·양인이 실존인물이라 할 증거는 없고, 문헌상으로는 1785년(정조 9)의 홍복영의 옥사에서 정감록이란 책에 대한 언급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1782년 조정을 떠들썩하게 한 역모사건이 발각된다. 



주범은 서북 출신(지금의 평안도) 천민 문인방과 명문가 양반 이경래.



이들은 간성, 양양, 강릉, 원주를 거쳐 동대문을 통해 도성을 함락시키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신분사회 조선에서 천민과 양반이 함께 역모를 꾸민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배후에는 정감록이 있었다.



역모사건의 배후가 된 정감록 




정감록은 조선의 선조인 이심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가 될 정씨의 조상인 정감이란 사람과 금강산 비로대에서 서로 문답을 기록한 책이라고 하며, 이후의 조선의 흥망대세를 추수하여, 이씨의 한양 몇 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 몇 백 년이 있다.



그 다음에는 조씨의 가야산 몇 백 년, 또 그 다음에는 범씨의 완산 몇 백 년과 왕씨의 어디 몇 백 년 등등으로 계승될 것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무슨 재난과 어떠한 화변이 있어 세태민심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하고 있다. 



정감록은 6.25전쟁을 미리 알고 있었다? 



정감록을 보면 백두산 북쪽에서 오랑캐의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하늘에 원한 맺힌 피가 넘칠 것이다라고 전해졌으며, 이에 일부사람들은 정감록이 한반도 최고의 비극 6.25전쟁까지도 예언한거라 생각하고 있다.



1950년은 호랑이의 해로 정감록에서는 호랑이와 토끼해를 당하여 남북이 서로 솥의 발 같이 대치하리라라는 표현을 하였고, 인천과 부평 사이에 밤중에 배 1,000척이 정박하고라는 구절은 맥아더 장군이 연합군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수백 척의 함대에를 동원한 인천상륙작전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사람들은 말한다.



정감록이 예언한 피난처는 십승지로, 정감록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곳의 명당, 이른바 십승지를 거론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은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 이른바 감록파의 후손들이 살고 있고, 암울한 시절 오롯이 정감록 하나만 믿고 고향을 등지며 내려온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보고 온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정감록 괜히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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